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문단 편집) === 토사구팽 === 그러나 매년 250이닝 이상 던지는 혹사와 몸에 다소 무리가 가는 독특한 투구폼, 여기에 [[야구의 구종]] 중에서도 몸에 무리가 간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크류볼]][* 스크류볼의 명수로 유명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좌완투수 [[칼 허벨]]은 야구선수를 그만둔 40대 이후에도 왼팔이 안으로 구부러지지 않을정도로 심하게 비틀려있었다.]이 주무기인 페르난도의 몸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8년 팀이 7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만, 이 때 플레이오프에서는 제대로 뛰지 못하면서 이탈했다. 1988년 시즌 후반부터 다저스는 마치 발렌수엘라가 1981년에 그랬듯, 그야말로 [[오렐 허샤이저]] 원맨팀에 가까울 정도로 허샤이저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시즌을 보냈는데, 그 유명한 6게임 연속 완봉 포함 59이닝 무실점 기록과 함께, 7차전까지 혈투를 벌인 챔피언십 시리즈의 대활약으로 MVP, 월드 시리즈 역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던 당대 최강팀 오클랜드마저 허샤이저의 위력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렸고, 대선배 [[샌디 쿠팩스]]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못지않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렇게 허샤이저의 맹활약 때문에, 포스트시즌에서 그동안 다저스와 리그의 대투수로 군림하던 발렌수엘라의 공백을 느끼지 못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불운이었다. 이는 곧 페르난도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점차 평균자책이 나빠지고, 성적이 좋지 못하자 1991년 스프링캠프 도중 다저스는 그를 '''방출한다.''' 문제는 방출 과정. 방출 자체야 프로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하필 시즌 '''개막 직전'''에 그를 버리면서 팀을 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은 것. 간신히 여름이 되어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입단했지만,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실력 발휘가 되기는 그른 일이었다. 또, 정말 몸 상태가 좋지 않기도 했고. 결국 1992년 시즌을 통째로 날린 그 뒤로는 [[저니맨]]의 길을 걸었다. 받아주는 메이저리그 팀이 없을 때는 [[멕시코 태평양 리그]]로 돌아가서 뛰기도 했는데, 이 생활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운 것은 고국인 멕시코와 가까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이 시즌 13승 8패 3.62의 성적을 거두면서 최후의 불꽃을 태웠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접어야 했다. 그렇다고 야구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어서 나이 44세인 2004년부터 2시즌 정도 [[멕시코 태평양 리그]]에 다시 선수로 뛰곤 했다. 혹사와 [[스크류볼]] 구사 때문에 전성기가 일찍 저문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만일 그의 나이가 정말 알려진 것보다 5살 정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나이에 따른 노쇠라고 보는 것도 타당하다. 즉 25세에 데뷔해서 30대 중반에 쇠퇴한 것이기 때문에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로 보면 되는 것. 하지만, 나이가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토미 라소다]] 감독 아래에서 혹사 당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